【수원=경기뉴스원/경기뉴스1】 | 미술은 때로 답을 필요로 하지않는다.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작품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향한다.

수원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한 《패트리샤 피치니니: 킨십(Kinship)》은 그런 전시다. 처음 마주한 작품은 솔직히 불편하다. 사람을 닮았지만 사람이 아니고, 동물을 닮았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들. 피부의 질감과 머리카락, 눈빛까지 실제와 다름없는 극사실적 표현은 낯섦을 넘어 당혹감마저 안겨준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몇 걸음 더 다가가고, 조금 더 오래 바라보면 그 기괴함은 서서히 사라진다. 대신 연민이 생기고, 보호해주고 싶은 감정이 피어난다. 낯설었던 존재가 어느새 익숙한 생명으로 친숙함으로 다가온다.
패트리샤 피치니니는 기자간담회에서 "낯설음은 결국 친숙함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이번 전시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이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삶도 그렇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상은 낯설고, 새로운 사람과 문화, 환경을 만나며 살아간다. 처음에는 두렵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삶의 일부가 된다. 낯설음은 결코 끝이 아니라 이해를 향한 시작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킨십(Kinship)' 역시 단순한 가족이나 혈연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존재가 맺는 관계, 함께 살아가는 책임, 그리고 공존을 이야기한다.
전시는 '깨어나다', '조우하다', '유대하다', '흔적들'이라는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생명의 탄생에서 시작해 만남과 관계, 그리고 기록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결국 한 편의 성장 서사와도 닮아 있다.
특히 대표작 〈신생가족〉은 낯선 존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혈연보다 중요한 것은 돌봄이며, 닮음보다 소중한 것은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이야기한다.
피치니니의 상상은 공상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의 작업은 생명공학과 환경윤리라는 현실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장기를 다른 생명체에서 배양하는 기술, 재생의학, 그리고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생명들. 그는 "인간을 살리기 위해 다른 생명을 희생하는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환경에 대한 시선도 마찬가지다. 바다거북은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을 먹고, 바다는 인간의 편리함 때문에 병들어 간다. 거창한 해법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아주 기본적인 책임이라고 그는 말한다.
작품은 상상의 생명체를 보여주지만, 사실 가장 낯선 존재는 작품 속 생명체가 아니라 우리 자신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오랫동안 인간 중심의 사고 속에서 살아왔고, 다른 생명은 늘 이용하거나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봐 왔다.
그래서 피치니니는 생명체를 인간처럼 만들었다. 그들을 가족처럼 보이게 했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로 탄생시켰다. 관람객이 스스로 편견을 내려놓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번 전시는 예술이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작품은 아름답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질문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낯설음은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거리감일 뿐이다. 그리고 그 거리는 관심과 공감이라는 작은 발걸음 하나로 충분히 좁혀질 수 있다.
우리는 지금도 수많은 낯선 존재들과 함께 살아간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기후위기로 인해 변화하는 생태계까지. 그 모든 낯섦을 밀어낼 것인가, 아니면 이해하려 노력할 것인가는 결국 우리의 선택이다.
《킨십》은 미술관 안에서 끝나는 전시가 아니다. 전시장을 나서는 순간에도 하나의 질문을 오래 남긴다.
우리는 얼마나 다른 존재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낯설음은 끝이 아니라, 친숙함을 향한 첫걸음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