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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탱고, 정열 너머의 예술

— 걷기에서 피어나는 가장 깊은 인간적 교감

“네 다리로 걷는 게 아니라, 네 감정으로 걷는다.”

 

누군가 아르헨티나 탱고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렇지 않을까.

땅고는 흔히 ‘정열의 춤’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격정보다는 절제된 감정, 자극보다는 내면의 교감에 중심을 둔, 매우 구조적이고 섬세한 예술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기원, 거리에서 시작된 땅고

땅고는 19세기 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구도시 보카에서 시작되었다.

그곳은 유럽에서 신대륙의 꿈을 안고 이민 온 사람들, 아프리카계 이주민과 노예의 후예, 남미 원주민, 목동 출신의 가우초까지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곳이었다.

 

그 혼합의 중심에는 음악이 있었다.

쿠바의 ‘하바네라’, 아프리카계의 ‘칸돔베’, 아르헨티나 시골의 ‘밀롱가’ 등 다양한 민속음악이 항구의 선술집과 거리에서 어우러졌다. 이들이 결국 '땅고'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다.

 

초기의 땅고는 유흥가에서 술을 마시며 남성들끼리 춤을 추거나, 매춘부들과 짝을 맞추어 추는 하층민의 춤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저급한 춤’은 191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유럽 상류층이 땅고에 열광하면서, 오히려 본국의 아르헨티나 상류층이 재평가하게 되었고, 땅고는 그 후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리듬, 규칙, 감정의 교차점

땅고는 단순한 춤이 아니다.

그 본질은 "걷기"에 있다. 그러나 이 걷기는 발의 움직임이 아니라 감정과 감정 사이의 거리를 걷는 것이다.

 

두 사람은 아브라소(Abrazo)라는 포옹 자세에서 춤을 시작한다.

이때 가슴과 가슴은 맞대지만 하체는 거의 접촉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가슴의 리드, 눈에 보이지 않는 무게 이동, 그리고 음악에 대한 공동 해석이다.

 

땅고는 정해진 안무 없이 리더가 실시간으로 길을 만들고, 팔로워는 그 의도를 읽고 반응한다.

이 섬세한 ‘즉흥의 대화’ 속에서 단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 필요한 것은 완벽한 신뢰와 집중이다.

 

음악, 타악기 없는 깊은 감성

흥미롭게도, 아르헨티나 탱고 음악에는 타악기가 없다.

땅고는 반도네온(Bandoneon)을 중심으로, 바이올린, 피아노, 콘트라베이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오르케스타 티피카’가 연주한다.

 

리듬은 오히려 멜로디나 박자의 끊김에서 발생하며, 댄서는 이 멈춤과 전진의 호흡을 타고 춤을 이어간다.

 

대표적인 오케스트라 스타일은 다음과 같다.

 

디 사를리(Di Sarli), 부드럽고 서정적인 선율

다리엔조(D'Arienzo), 리듬 중심, 초보자도 추기 쉬운 스타일

트로일로(Troilo), 리듬과 멜로디의 균형

뿌글리에세(Pugliese), 해석 난이도가 높고 감정 표현이 극적

 

그리고 땅고 음악의 경계를 허물며 클래식, 재즈, 현대 음악을 융합한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는 누에보 땅고(Nuevo Tango)라는 장르를 탄생시켜 땅고를 세계적인 예술로 끌어올렸다.

 

춤, 철저히 절제된 감정의 표현

땅고는 불꽃 같은 격정의 춤이 아니라, 차오르는 감정을 절제 속에서 표현하는 춤이다.

무대에서 보여주는 공연형 땅고(에세나리오)도 있지만, 일상 속에서 즐기는 소셜 댄스(데 피스타)가 본질이다.

 

소셜 밀롱가에서는 '까베세오(Cabeceo)'라는 독특한 초대법이 있다.

상대방을 눈빛으로 초대하고, 수락하면 다가가 춤을 시작한다. 이는 불필요한 거절이나 불편함을 줄이는 세심한 문화이다.

 

땅고는 평균적으로 6~8보 또는 그 이상을 한 세트로 추며,

그 안에 ‘오초’, ‘간초’, ‘볼레오’ 등 다리로 표현되는 복잡한 테크닉이 담긴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파트너와의 공감이 없으면 그 춤은 땅고가 아니다.

 

현대의 땅고, 누구나의 춤

오늘날 아르헨티나 탱고는 세계 곳곳에서 사랑받고 있다.

특히 감정 표현을 중시하는 성인 세대에게는 건강한 취미이자 삶의 활력으로 자리잡았다.

 

40~60대 이상 연령층이 비교적 격렬한 움직임 없이도 오랜 시간 즐길 수 있는 춤이며, 동시에 자기 성찰과 치유를 경험하는 예술이다.

 

땅고를 처음 배우는 이들은 몇 달간 걷는 법과 파트너 홀딩만 반복하며 기본을 다진다.

춤이 아닌 ‘호흡’을 익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땅고를 하루아침에 추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그 문턱을 넘으면, 일생 동안 사랑할 수밖에 없는 춤이 된다.

 

땅고는 ‘춤’이 아니다

땅고는 음악도, 춤도, 포옹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나타나는 감정의 흔적이다.

 

정형화된 동작이 없고, 음악도 제한적이며, 늘 같은 공간에서 반복되지만

매 순간이 다르고, 매 춤마다 다른 인연을 만든다.

 

그래서 땅고를 경험한 이들은 말한다.

“이 춤이, 내 인생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