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처참하게 패한 조조(曹操)는 남쪽으로 후퇴했다. 그의 군대는 이미 수많은 병력을 잃었고, 장수와 병사들은 흩어져 혼란에 빠져 있었다. 좁고 험한 산길, 화용도로 접어드는 순간, 조조는 온몸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좁은 길목에는 단 한 줄의 병력만 지나갈 수 있었고, 저 앞에서는 유비 휘하 장수 관우(關羽)가 포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조조(曹操)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뒤에서 따라오는 부하들의 시선도 불안으로 가득했다. 그는 이 순간, 단순히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부하들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조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들으라. 옛날 유공지사(庾公之斯) 이야기를 아는가?”
그는 부하들에게 유공지사(庾公之斯)와 자탁유자(子濯孺子) 고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정(鄭)나라가 자탁유자(子濯孺子)를 보내어 위(衛)나라를 공격하다. 위나라의 유공지사(庾公之斯)에 패하여 달아나다. 위나라 장수 유공지사(庾公之斯)는 자탁유자(子濯孺子)를 추격했지만, 도망 중인 자탁유자가 “나는 유공의 스승의 스승과 인연이 있습니다. 살려주십시오.”라고 호소하자, 그는 적장을 죽이지 않고 풀어주었다.
유공지사(庾公之斯)는 활 솜씨가 뛰어난 명궁이었지만, 단순히 적을 처치하는 것보다 도덕과 인연을 존중하는 판단을 실천했다.
조조(曹操)는 이야기를 마치며 부하들을 바라봤다.
“적을 무조건 죽이는 것이 전쟁의 정의가 아니다. 도덕과 의리를 지키는 것이 때로는 우리를 살리는 길이 된다.”
그 말이 끝나자, 시야의 끝에서 관우(關羽)가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갑옷과 긴 청룡언월도가 산길을 가득 메웠다. 관우의 눈빛은 차갑고 날카로웠지만, 동시에 깊은 의리를 담고 있었다. 조조(曹操)는 숨을 고르며 한 발 물러섰다.
관우(關羽)는 칼을 겨누었지만 단 한 번도 치명적인 공격을 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유공지사가 자탁유자를 살린 이야기가 떠올랐다. 전투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리와 도덕을 지키는 선택이 더 큰 가치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조조(曹操)는 뒤돌아보며 겨우 안도했다. 관우의 의리 덕분에, 그는 살아남았고 병사들을 이끌고 퇴각할 수 있었다.
화용도(華容道)에서의 생존은 단순한 행운이 아니었다. 그것은 활의 신궁 유공지사(庾公之斯)가 보여준 도덕의 실천과, 관우의 인간적 판단과 의리가 맞물린 결과였다.
활과 도덕, 그리고 인간의 선택
유공지사(庾公之斯)는 활의 명수였지만, 그의 진정한 힘은 도덕적 판단에 있었다. 관우 역시 뛰어난 무력이 있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의리와 도덕적 선택이었다. 화용도(華容道) 사건과 유공지사(庾公之斯) 고사는 우리에게 다음을 상기시킨다.
단순한 승리보다, 인간적 판단과 도덕적 선택이 생명과 명예를 지킨다.
능력과 무력은 중요하지만, 그 위에 도덕과 의리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전쟁 속에서도, 인간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선택과 판단의 기준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조조(曹操), 관우(關羽), 그리고 유공지사(庾公之斯). 그들은 시대와 장소를 달리했지만, 활과 도덕, 의리의 교차점에서 인간적 품격을 드러낸 장수들이었다. 화용도(華容道)에서 살아남은 조조(曹操)의 운명은, 바로 이 도덕과 의리의 힘 덕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