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과 고양, 두 특례시는 수도권 도시재편의 최전선에 서 있다.
수원은 26개 철도역을 중심으로 역세권 고밀도 복합개발을 추진하며 도시의 체질을 바꾸고 있고, 고양시는 GTX-A 노선과 대곡역세권 개발을 포함한 다수의 신도시·복합단지 조성 사업으로 상업 및 업무시설 공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개발’이 과연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는 조금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수원이 계획적이고 기능 중심의 역세권 재편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고양은 공급 속도와 규모 면에서 ‘과잉’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도시는 공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결국 핵심은, 그 공간을 실제로 누가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느냐는 ‘수요’의 문제다.
수원, 도시의 체질을 바꾸는 압축 개발
수원시는 지난 몇 년간 역세권을 중심으로 도시공간 구조를 전면 재편하는 ‘공간 대전환’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신분당선, 인덕원-동탄선 등 광역철도망과 연계해 26개 역세권을 선정하고, 그중 22곳을 중심으로 고밀도 복합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재준 수원시장은 이를 “미래성장 거점”으로 육성하겠다며,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닌 일자리형·생활밀착형·도심복합형으로 기능을 구분해 개발을 진행 중이다.
이들 역세권에는 업무·상업시설과 공공기여시설이 적절히 배치되며, 도심형 일자리 창출과 주거환경 개선을 동시에 노리고 있다.
전략적으로 9개 역세권은 70만 평 규모의 전략지구로 지정됐고, 전체 개발면적은 약 140만 평에 달한다.
특히 수원시는 국토부의 2025년 도심복합개발법 시행을 앞두고, 용도지역 변경, 용적률 완화 등 규제 유연화와 행정지원을 통해 민간사업자가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살기 좋아진 수원”이라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공간 대전환이다.
고양, 개발의 속도 앞선 상업시설 과잉공급
반면, 고양시는 유사한 역세권 개발을 추진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상업시설 과잉공급에 따른 공실률 증가 우려가 커지고 있다.
GTX-A 창릉역, 대곡역, 원흥역, 덕은지구 등 교통 호재를 중심으로 한 복합단지 개발이 잇따르며, 다수의 상업시설이 신규 분양 또는 입주 중이다.
대표적인 예로, 원흥역 인근의 ‘클래시아 더퍼스트’는 오피스텔과 함께 복합 상가 45실을 분양했고, 덕은지구의 ‘DMC 아이에스BIZ타워’는 연면적 20만㎡ 수준의 대형 상업단지로 조성됐다.
이외에도 고양 원흥 줌시티, 대곡역세권 자족기능 지구 등에서도 상업시설 공급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상업시설의 공급 규모가 실제 지역의 소비 수요를 초과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상가가 몰리는 데 비해 유입 인구나 기업, 소비자의 유동은 상대적으로 한정되어 있고, 중복되는 상권의 경쟁까지 겹치며 공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방송영상밸리 관련 사업 추진 과정에서 고양시 일부 관계자는 “주변 상업시설 공실률이 50%에 달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는 상업공간이 도시의 수요를 초과할 경우, 외형만 갖춘 유령 공간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대비되는 두 도시의 개발 철학
수원과 고양 모두 역세권 중심 개발을 추진하고 있지만, 접근 방식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수원은 기능별 구획과 수요 기반 전략 설정, 정책 유도와 규제 완화의 균형을 맞추고자 한다.
상업시설 비중도 평균 35% 수준이지만, 생활밀착형 개발지에는 주거 비중을, 일자리형 역세권에는 업무 중심의 기능을 부여하며 유연하게 설계 중이다.
반면 고양시는 다수의 상업시설이 분양 위주로 빠르게 공급되고 있고, 기능 구분이나 수요 조정보다는 입지와 브랜드 경쟁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
결과적으로 ‘공급이 수요를 앞서고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 수원과는 방향성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업시설의 ‘공실 도미노’
상업시설이 지나치게 공급될 경우, 가장 먼저 나타나는 문제는 공실률 증가다.
이후 공실이 장기화되면 임대료 하락 → 투자 수익성 악화 → 신규 입점 저조 → 상권 붕괴 → 인근 부동산 가치 하락이라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고양시처럼 유사한 유형의 상업시설이 동일 지역에 집중 공급되는 경우, 일부는 개장 후 몇 년 안에 공실 상태로 방치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임차인은 높은 임대료와 낮은 매출로 피해를 입고, 소상공인 창업은 실패로 이어지기 쉽다.
이러한 리스크는 단순한 민간 투자 실패를 넘어 도시 자산의 효율성과 행정비용 문제로 번지게 된다.
공실 상가가 늘면 관리·보안·유지비용도 증가하고, 도시 이미지는 쇠퇴한다.
속도보다 ‘조율’이 중요하다.
고양시가 이 같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선 공급 조절, 시기 분산, 기능 다양화 등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단기적인 분양 수익보다는, 중장기적인 도시 유지 능력을 고려해 개발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상업시설 용도 및 비율의 유연한 조정
공실률 모니터링 및 정책적 대응
테넌트 다양화와 소비 유도 프로그램 병행
문화·공공기능 복합화를 통한 공공성 강화 등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공간을 만드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수원과 고양은 같은 특례시이지만, 개발의 방향과 질은 전혀 다르다.
수원은 기능 중심, 수요 기반, 행정 연계의 3박자로 개발을 설계하고 있고, 고양은 입지와 기대감에 따른 상업공간 과잉공급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도시를 설계하는 일은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살게 만드는 일이다.
“누가, 언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치밀한 설계 없이는,
어떤 화려한 개발도 결국 비어 있는 건물들만 남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