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8 (월)

  • 맑음동두천 5.5℃
  • 구름조금강릉 12.2℃
  • 연무서울 7.2℃
  • 연무대전 9.7℃
  • 연무대구 5.8℃
  • 연무울산 10.3℃
  • 박무광주 10.3℃
  • 연무부산 11.7℃
  • 구름많음고창 9.7℃
  • 구름조금제주 14.0℃
  • 맑음강화 5.5℃
  • 구름많음보은 9.0℃
  • 구름많음금산 10.3℃
  • 구름조금강진군 5.9℃
  • 구름조금경주시 6.6℃
  • 맑음거제 12.1℃
기상청 제공

[칼럼] 세종시 어서각(御書閣)은 국가문화재다

하지만.. 어서각이 처한 슬픈 현실..

세종특별자치시 아름동에 자리한 어서각(御書閣)을 두고 "더 이상 ‘향토문화유산’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 전각이 지닌 역사적·문화사적 위상을 생각하면, 어서각은 이미 사실상 국가문화재다. 남은 것은 그 위상에 걸맞은 공식적 지정 절차를 밟는 일뿐이다.

 

우선, 어서각은 단순한 전각이 아니다.
조선 태조·영조·정조·고종, 네 명의 국왕이 남긴 친필이 한 공간에 봉안됐던 사실은 한국 문화유산사에서 전례를 거의 찾기 어려운 일이다.

 

태조의 교지, 영조가 직접 쓴 ‘어서각(御書閣)’ 편액, 정조와 고종의 어필까지.. 이는 조선왕조 500년의 정치·사상·기록 문화가 한 자리에 압축된, 전국에서 유일무이한 전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희귀성은 문화재 지정의 필요성을 넘어, 국가 차원의 보호가 ‘필수’임을 말해준다.

 

둘째, 어서각은 전통 서각의 건축적 원형을 간직한 실체 유산이다.
1744년 영조의 명으로 건립된 이후 수차례 중건을 거치면서도, 겹처마 팔작지붕, 우물마루, 기단과 주초의 구성, 솟을삼문과 담장에 이르기까지 전통 전각(殿閣)의 구조가 자연스럽게 유지되어 왔다.

 

조선 후기 서각 건축의 층위를 고스란히 관찰할 수 있는, 학술적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다. 문화재 지정 기준에서 강조하는 ‘원형 보존’이라는 조건을 충실히 충족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구조와 배치가 왕실 문서 봉안 공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여전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더욱 높다.

 

셋째, 어서각의 형성 배경은 지역의 전설을 넘어 국가적 서사다.
강순용 가문과 태조 이성계의 인연은 단순한 미담이 아니다. 고려 말 혼란기, 용연에서 물을 마시던 이성계에게 강순용 여동생이 버들잎을 띄운 물을 건넨 일화는, 한 여성의 세심한 배려가 훗날 성후협비라는 지위로 보답받고, 그 가족에게 왕지까지 하사되는 한 편의 역사적 상징이다.

 

영조는 이 이야기를 듣고 후손을 위로하기 위해 친필로 ‘어서각’을 쓰고 건립을 명했다. 이는 왕실이 인정한 지역 명문가의 역사이며, 지방과 왕실의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정치·문화사적 기록이다. 이러한 배경은 어서각을 지역의 작은 전각이 아닌, 국가사가 깃든 문화유산으로 만들어준다.

 

넷째, 어서각은 ‘어서각’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여러 전각들 중 가장 온전한 실체 전승을 가진 곳이다.
전국에는 과거 어서각 또는 어필각으로 불렸던 전각들이 존재했지만 대부분 원형이 사라지고, 건물만 남거나, 본래의 기능과 기록이 단절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종 어서각은 건물·문헌·전승·기능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는, 말 그대로 유일급 실체 어서각이다. 전국적 희소성은 물론, 한국 기록문화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남은 공간이 바로 이곳이다.

 

하지만 어서각이 처한 슬픈 현실..
공원 시설물은 노후화가 심각하고, 보호수 주변의 토사 유실 문제는 반복되고 있다. 향토문화유산 수준에서 관리되는 지금의 체계로는 어서각이 가진 역사적 원형을 장기적으로 지켜내기 어렵다. 문화재의 보존과 활용, 학술 조사, 관리 인력 배치 등 모든 면에서 국가적 관리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세종시 어서각은 이미 그 본질적 가치로 보나 희소성으로 보나 국가문화재의 자격을 충분히 넘어선 문화유산이다. 오히려 아직까지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아할 정도다.

 

왕실 기록문화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전각, 18세기 조선 건축의 실체, 지역과 왕실의 서사가 깃든 공간, 전국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실체 어서각—이 모든 것을 갖춘 유산을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보호한단 말인가.

 

세종시 어서각은 국가문화재다.
 

이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