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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의 한계, 그리고 해법은 없는가

힘도 도덕도 작동하지 않는 시대의 갈등 관리

사회적 갈등이 격화될수록 ‘중재자’에 대한 요구는 커진다. 그러나 현실에서 중재는 종종 실패한다. 경제력, 군사력, 제도적 권위까지 갖춘 주체조차 갈등을 봉합하지 못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중재의 한계가 분명해지고 있다.

 

힘을 가진 중재자는 왜 실패하는가

전통적으로 중재는 힘과 신뢰를 기반으로 작동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갈등은 단순한 이해관계 충돌이 아니라 정체성과 감정이 결합된 양극화의 형태를 띤다. 이 경우 중재자는 더 이상 ‘조정자’가 아니라 ‘한쪽 편’으로 인식되기 쉽다.

 

국제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강대국은 스스로를 중재자라 부르지만, 이해당사자들은 이를 신뢰하지 않는다. 경제력과 군사력은 압박 수단이 될 수는 있어도, 갈등을 해결하는 설득의 도구로는 한계를 드러낸다.

 

중간지대의 붕괴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중간지대는 위축된다. 중재의 핵심 자산이었던 공무원, 전문가, 언론인 등은 ‘중립’이라는 이유로 공격의 대상이 된다. 양측 모두 중간을 배신으로 간주하며, 중재자는 갈등 완화자가 아니라 희생양이 된다.

 

이 과정에서 대화는 기능을 상실한다. 대화에는 미리 정해진 ‘정답’이 없지만, 양극화된 환경에서는 상대가 원하는 답을 내놓지 않는 대화 자체가 적대 행위로 해석된다.

 

구조가 연료를 공급한다

갈등은 하루아침에 폭발하지 않는다. 차별적 제도, 불공정한 보상 구조, 반복되는 무책임한 대응이 서서히 연료를 축적한다. 예컨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고용 형태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는 구조는 갈등의 심지를 키운다. 표면적 사건은 방아쇠일 뿐, 폭발의 원인은 구조에 있다.

 

언론 역시 무관하지 않다. 갈등을 단순한 흑백 구도로 재현하는 보도는 이해를 돕기보다 감정을 증폭시키며 양극화를 강화한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가

중재의 해법은 ‘완벽한 합의’가 아니라 연료 제거에 있다. 첫째, 싸우는 집단과 단순 추종 집단을 구분해야 한다. 모든 참여자를 동일한 적대 주체로 취급하면 갈등은 확대된다.

 

둘째, 지도자는 분배의 언어를 회복해야 한다. 잉여 자원과 성과를 특정 집단이 아닌 사회 전반에 나누는 정책은 갈등을 완화하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다. 이는 양극 간의 힘겨루기를 관리하는 ‘완충 장치’가 된다.

 

셋째, 서사의 균형이 필요하다. 문제와 실패만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방식은 분노를 연료로 삼는다. 개선의 가능성과 성과를 함께 제시할 때 중재의 공간은 다시 열린다.

 

중재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

중재의 한계는 명확하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중재, 도덕적 우위를 자처하는 중재는 실패한다. 반대로 갈등의 구조를 인정하고, 연료를 줄이며, 중간지대를 보호하려는 태도는 느리지만 지속적인 효과를 낳는다.

 

양극화된 사회에서 중재란 갈등을 끝내는 기술이 아니라, 폭발을 늦추고 공존의 시간을 벌어주는 정치적·사회적 태도에 가깝다. 그 현실을 직시하는 것에서 해법은 시작된다.

프로필 사진
유형수 기자

유(庾), 부여 성흥산성에는 고려 개국공신인 유금필(庾黔弼) 장군(시호 ‘충절공(忠節公)’)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후대 지역 주민들이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우고 제사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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