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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부여 우금치, 대한민국 민주화를 시작하다

기억에서 제도로, 추모에서 미래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우리는 흔히 4·19혁명이나 5·18민주화운동을 민주화의 출발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앞선 1894년, 이름 없는 민초들이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외치며 집단적으로 저항한 역사가 있다. 바로 부여 우금치다.

 

우금치는 단순한 전투지가 아니다. 이곳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처음으로 집단적 실천과 희생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역사적 출발점이다.

 

민주주의 이전의 민주주의,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운동은 단순한 농민 반란이 아니었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人乃天)”라는 동학의 사상은 신분 질서를 부정하고 인간 존엄과 평등을 선언한, 근대 민주주의 이전의 민주주의였다.

 

동학농민군은 부패한 권력의 개혁을 요구했고, 스스로 지역을 다스리는 자치를 실천했으며, 외세의 침탈에 맞서 민족의 자주를 외쳤다. 이는 오늘날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주권, 평등권, 저항권, 참여 민주주의의 원형과 다르지 않다.

 

우금치 전투, 피로 쓰인 민주화의 시작
1894년 11월, 부여 우금치에서 동학농민군은 관군과 일본군의 신식 무기에 맞서 마지막까지 싸웠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수많은 농민과 민초들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쓰러졌다.

 

그러나 역사는 결과보다 의미로 기록된다.
우금치에서 흘린 피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3·1운동으로, 4·19혁명으로, 5·18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우금치는 그렇게 대한민국 민주화의 첫 장면이 되었다.

 

기억되지 못한 시작, 지금 바로 세워야 할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금치는 오랫동안 ‘동학농민군 패전지’라는 제한된 의미로만 기억돼 왔다. 민주주의의 시작이라는 위상에 비해 국가적 기념과 제도적 평가, 교육은 턱없이 부족했다.

 

민주주의의 시작을 외면한 사회는 민주주의의 현재 또한 온전히 지킬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우금치를 다시 세워야 하는 이유는, 민주주의가 완성형 제도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지켜내야 할 가치이기 때문이다.

 

1만 1개의 수많은 핏빛 황토·흙벽돌·상징탑, 민주를 쌓다
우금치를 민주화 성지로 만드는 핵심은 상징의 공간화다.
이를 위해 본지(경기뉴스원)에서 제안하는 상징탑을 소개하면 ‘1만 1개는 수많은 농민을 상징하는 핏빛 황토에서 민주를 상징하는 단단한 흙벽돌로 되어가고 1개는 이제 그 자유가 오늘날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은 상징탑’이다.

 

1만 개의 흙들과 흙벽돌 탑은 우금치에서 희생된 이름 없는 농민군과 민초들을 상징한다.
황토흙은 부서진 황토벽돌에서 점차 형태를 갖추며 커지는 구조로, 억압 속에서도 성장해 온 민주주의의 여정을 형상화한다.

 

가장 큰 1개는 상징탑이 동학농민군의 함성이 과거가 아닌 오늘날 새롭게 시작하는 현시점을 말한다.
농민, 소상공인, 여성 등 오늘날의 사회적 약자들이 함께 깨지고 찌그러진 형태와 함께 완성되어 가고 있는 정사각형의 황토벽돌을 힘겹게 들어 올리는 모습으로 민주주의가 과거의 성취가 아니라 지금 들어 올려야 할 과제임을 보여준다.

 

이 상징탑은 단순한 추모비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기념하는’ 공간이자 ‘실천을 묻는’ 공간이다.

 

기억을 제도로 만들기 위한 법적 단체 설립
추모와 기억은 개인의 헌신에만 맡겨둘 수 없다.
동학농민운동은 이미 교과서에 실린 국가의 역사다. 그렇다면 그 기념 또한 국가의 책임이어야 한다.

 

동학농민운동 관련 단체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행정 지원을 받는 법정 기념 단체로 지정하고, 전국 각지 농민 대표가 참여하는 전국 단위 기념·추진 단체를 설립해야 한다.

 

이는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다른 단체들이 갖는 법적 위상에 앞서 다루어져야 한다.

 

민주주의의 뿌리를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일은 늦었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화 성역 순례와 교육의 중심지, 부여
부여 우금치를 중심으로 전국 최초 ‘한국 민주화 성역 순례코스’를 조성하고, 민주주의 교육관과 시민 강좌를 운영한다면 부여는 단순한 역사 관광지가 아니라 민주 시민 교육의 중심 도시이며 발상지로 거듭날 수 있다.

 

이는 지역 발전을 넘어, 민주주의를 일상 속에서 배우고 체험하는 국가적 교육 자산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기억할 때 살아 있다
민주주의는 제도 이전에 기억이며, 기억 이전에 희생이다.
부여 우금치를 기억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자신의 시작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여 우금치.
대한민국 민주화를 시작한 그곳을, 이제는 국가와 사회, 그리고 시민 모두가 함께 기억하고 지켜야 할 시간이다.

 

그 기억이 제도가 될 때,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프로필 사진
유형수 기자

유(庾), 부여 성흥산성에는 고려 개국공신인 유금필(庾黔弼) 장군(시호 ‘충절공(忠節公)’)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후대 지역 주민들이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우고 제사지내고 있다.
유(庾) 부여 성흥산성(聖興山城)과 충절공(忠節公) 유금필(庾黔弼) https://www.ggnews1.co.kr/mobile/article.html?no=459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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