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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중견이라는 이름의 사각지대… 경기미술관 ‘중견작가 집중조명’ 네번의 시도

경기미술관, 올해의 ‘중견작가 집중조명’.. 그들의 유토피아는 어디에

프로그램은 한국 미술계의 구조적 문제를 직설한다. 

신진과 원로 사이,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채 제도적 공백지대에 놓인 중견작가들을 위한 자리 만들기다. 

 

경기미술관 전승보 관장은 “청년작가는 그리면 시작할 수 있고, 원로작가는 이미 그려놓은 것이 있다. 그러나 중견은 그 중간에 끼어 있다”고 말한다. 이 ‘끼임’이 바로 중견작가가 겪는 가장 큰 현실적 벽이다.

 

 

중견이 빠지는 틈과 사라진 계단

신진 작가에게는 다양한 지원사업과 레지던시 기회가 주어진다. 원로 작가에게는 회고전과 공공기관의 재조명 프로그램이 준비된다. 

그러나 중견작가는 어느 제도에도 안정적으로 포함되지 않는다. 경력은 충분하지만 아직 원로로 인정되지 않는 나이, 작업 세계는 견고해졌지만 시장과 전시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그 결과, 상당수 중견작가는 전시 기회 부족, 판매의 어려움, 프로젝트 지속을 위한 재정 취약성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린다. 미술계에서 가장 생산적이고 역동적일 시기에 오히려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이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경기미술관의 ‘중견작가 집중조명’은 단순한 전시 프로그램을 넘어, 생태계 구조에 대해 알리는 도전적 개입이라 할 만하다.

 

지역 기반 중견작가, 다시 이름을 세우다

올해 집중조명 대상 작가는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박혜수, 최수앙. 

모두 경기 지역에서 활동하며 탄탄한 작업 경력을 쌓아왔지만, 공공 미술관에서 대규모로 작업 세계를 펼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 ‘트라우마’를 다루는 작지만 수많은 순간의 갈등 그리고 삶속에서

프랑스에서의 작업 등.. 포함한 15점 이상의 신작을 선보인 김나영 작가는 ‘트라우마’라는 무거운 주제를 “작은 단위의 삶”을 통해 풀어낸다.

트라우마 건물은 그것들의 합체이다. 우리 삶 그갈등의 요소를 시각화하고 순간순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시작업을 함께하는그레고리 마스는 세상에는 수많은 호랑이들이 있다. 호랑이를 죽여야 한다. 그것은 트라우마이며 갈등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러한 트라우마라는 독창적 작업 세계에도 불구하고, 정기적으로 발표할 기반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그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고 할 수 있다.

 

최수앙 ― 인체와 자연을 관통, 그리고 드러나는 것

해부학적 접근과 반투명 조각 등 오랜 시간 축적해온 조형 실험에도 불구하고, 최수앙 작가 또한 장기적 연구를 보여줄 기회가 제한적이었다. 

보이는 인체는 단순하다. 그안에 들어가면 수많은 모습들이 내재하고 있다. 그것을 하나하나 스케치하고 조각조각 완성품으로 만들어낸다. 작품의 본모습을 표현하고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이번 전시는 그의 섬세한 조형 언어가 제대로 호흡할 수 있는 드문 무대다.

 

박혜수 ― 사회적 서사와 생존성

탈북민 50인의 삶을 기록한 이번 프로젝트는 오랜 시간 진행되어 왔다.

벽화는 그래피티 작가와 협업으로 완성됐다.

탈북민들의 이상향은 무엇일까.. 자유일까 여러나라를 거쳐 수많은 난관을 넘어 찾은 그들의 유토피아는 무엇인가.

작가는 한국은행의 협조로 제공받은 지폐조각들을 바람에 날려 보낸다. 그앞에 지폐가 쌓여 있다. 전시 공간은 넓다. 그곳을 청소기가 돌아다니며 묻는다. 탈북민들의 오아시스는 어디에 있냐고. 아직도 찾고 있냐고.

그들의 천국은 아직도 그어딘가에 숨어있다. 탈북민의 생존은 작가의 생존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작가는 사회적 서사를 기반으로 한 작업은 판매와 연결되기 어려운 특성상, 중견 작가에게 더욱 생존의 어려움을 안긴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축적해온 20년 작업 세계를 다시 한 번 조명하는 자리로 우리앞에 다가선다.

 

“중견은 한국 미술의 허리인가?”

세 작가의 작업 세계는 서로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꾸준히 해왔으나 보여줄 자리가 부족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경기지역을 기반으로 생산적인 작업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공공기관의 체계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작업의 확장성과 지속성은 쉽게 위협받는다.

 

경기미술관의 이번 기획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인식한 뒤

중견작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장(場)”과 “지속적 작업 기반”을 마련하려는 시도이다.

단순히 세 명의 작가를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배경에 있는 미술 생태계의 허점을 드러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지원은 순간이 아니라 생태계 유지가 되어야

중견은 미술 생태계에서 가장 생산적이며, 가장 활발하게 실험이 이루어지는 시기다. 하지만 지금처럼 제도적 공백이 방치될 경우, 한국 미술은 그토록 강조해온 다양성과 지속성을 유지할 수 없다.

 

경기미술관의 ‘중견작가 집중조명’은 그 네번째 걸음을 띠었다.

중견작가가 사라지지 않는 미술 생태계를 위해, 이제 공공기관·시장·비평계 모두가

“중견이 설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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