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초, 미국 조지아주에서 벌어진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대규모 단속은 단순한 불법 체류자 체포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구금된 300여 명의 한국인 근로자, 석방을 둘러싼 외교적 갈등, 그리고 뒤따른 현대차 전기차 공장 운영 차질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한미 양국의 긴장선을 팽팽히 당기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미국 이민법 위반에 따른 단속이지만, 이 사건은 글로벌 공급망과 외국인 투자 전략, 그리고 정치적 메시지까지 얽혀 있는 복합적 외교·경제 이슈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전기차 산업의 현지화를 위해 수십조 원을 투자했다. 특히 조지아주는 미국 전기차 벨트의 핵심지로, 현대차의 첫 전기차 전용 공장이 위치한 곳이다. 이번 단속으로 해당 프로젝트의 일정은 지연이 불가피하며, 공사와 생산에 투입될 인력 수급에도 심각한 혼선이 생겼다.
가장 큰 문제는, 단속된 근로자 중 일부가 유효한 B‑1 비자 또는 ESTA로 입국해 형식적으로 합법적인 체류자였다는 점이다. 현장 고용 과정에서 다소 모호하거나 느슨했던 고용·비자 구조는 결국 현지 법과 충돌했고, 미국은 이에 대해 ‘무관용’으로 응답했다.
이는 외국 기업에 보내는 신호이기도 하다.
“투자하되, 미국의 법과 질서 아래에서.”
이번 사건은 전통적인 한미 동맹의 단단한 이미지에 균열을 드러냈다. 수백 명의 한국 국민이 미국 땅에서 집단 구금되고, 그 석방을 위해 외교부 장관이 워싱턴으로 급파되어야 하는 상황은 동맹이자 투자 파트너로서 한국이 존중받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를 불러온다.
특히 미국 내 일부 인권단체와 언론은 ICE의 단속 방식을 두고 과잉 집행 및 인권 침해 논란을 제기하고 있다. 자진 출국을 조건으로 한 석방조차 행정 절차 지연으로 미뤄지고 있는 현실은, “법 집행과 외교 배려는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이 사건을 둘러싼 정치적 맥락도 빼놓을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단속 직후, “외국 기업은 미국 법을 존중해야 하며, 미국인 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트럼프가 내세운 메시지는 명확하다.
“강력한 이민 규제” + “고급 제조업 유치”의 동시 추구.
하지만 현실은 이 두 목표가 서로 충돌하는 구조다. 외국인 전문 인력 없이는 고급 제조업 기반 유지가 어렵고, 반대로 단속을 강화하면 투자는 위축된다. 이번 사태는 트럼프식 정책의 내적 모순을 드러내면서도, 역설적으로 트럼프에게는 “미국 우선주의를 관철하는 리더”라는 이미지를 강화할 기회가 되고 있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자국민 일자리 보호·기술 자립 강조와 외국기업 ‘순치’ 전략을 정치적 무기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 사태는 한국과 미국 모두에게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만든다.
한국은 해외 진출 기업들의 현지 고용 및 비자 전략을 전면 재점검해야 하고, 미국은 ‘친기업’과 ‘강경 이민정책’ 사이의 균형을 고민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외교 채널은 더욱 긴밀해질 수밖에 없고, 때로는 날카로운 대립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통해 제도적 허점과 외교의 한계를 정면으로 인식하고, 양국 모두 책임 있는 파트너로서 개선을 주도해 나가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건 감정이 아닌 구조적 해법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한미 양국 모두 자신에게 불편한 질문을 먼저 던지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