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경기뉴스원/경기뉴스1】 | 130년 전 공주 우금치에서 스러져간 동학농민군의 외침은 단순한 농민 봉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봉건적 신분질서와 왕조 중심 통치 체제를 근본에서 개혁하고, 민중이 스스로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 한국 민주주의의 원형적 출발이었다. 그 역사적 현장을 되살리기 위한 국가적 정비 사업이 다시 속도를 내게 됐다.
박수현 의원(더불어민주당·충남 공주·부여·청양)은 13일 “2026년도 예산에 ‘공주 우금치 전적 국가유산 정비사업’ 국비 10억 8,000만 원이 확정 반영됐다”고 밝혔다. 이는 국회를 통과한 국가유산 보수정비 예산 가운데 우금치 전적 관련 예산을 증액 반영한 성과로, 지방비를 포함한 총사업비는 16억 4,000만 원에 달한다.
박 의원은 이번 예산 확보의 의미에 대해 “130년 전 공주 우금치에서 쓰러진 1만여 동학농민군이 꿈꾸었던 국민주권의 이상을 오늘의 역사 공간 속에서 되살리는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봉건 왕조의 몰락을 고발한 우금치
1894년 우금치 전투는 동학농민혁명의 결정적 패배로 기록되지만, 역사적 의미는 패배 그 자체에 있지 않다. 동학농민군은 탐관오리의 수탈과 신분 차별, 왕조 중심의 봉건 질서에 맞서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을 내걸고 봉기했다. 이는 백성이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의 주체임을 선언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조선 정부는 농민의 요구를 제도 개혁으로 수용하기보다, 일본군의 힘을 빌려 이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우금치에서 벌어진 대규모 학살은 조선 왕조가 이미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상실했음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었다.
우금치는 곧 봉건 왕조 체제가 역사적으로 종언을 고한 현장이자, 외세 의존이 불러온 비극의 출발점으로 남았다.
농민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
우금치에서 동학농민군은 패배했지만, 그들이 외친 평등과 자치, 민중 주권의 이념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 정신은 이후 천도교로 계승돼 3·1운동과 항일 민족운동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역사학계는 동학농민혁명을 한국 최초의 근대적 민주화 운동으로 평가하며, 우금치 전투를 그 가장 치열한 실천의 현장으로 본다.
박수현 의원이 “우금치에서 쓰러진 이들의 꿈은 좌절이 아니라 계승이었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금치는 실패한 전쟁터가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가 가장 먼저 태동한 역사적 공간이라는 인식이다.
10년 만의 종합정비계획, 성역화 사업의 전환점
이번 2026년도 예산에는 우금치 전적 종합정비계획 재수립 1억 원, 토지 매입 9억 원, 방문자센터 어린이 영상 제작 8,000만 원 등이 포함됐다. 지방비를 더하면 각각 2억, 12억 8,000만 원, 1억 6,000만 원 규모다.
특히 종합정비계획은 2017년 수립 이후 10년 가까이 개편되지 않아, 그동안 사업이 단편적·비체계적으로 추진돼 왔다. 박 의원은 국회와 당정협의 과정에서 “새로운 설계도 없이는 성역화 사업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며 종합계획 재수립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기념관 건립’으로 이어질 역사 복원의 첫걸음
또 하나의 핵심은 토지 매입이다. 국가유산청 자료에 따르면 우금치 전적지는 전체 면적 69만 8천여㎡ 중 현재까지 매입률이 23.3%에 불과하다. 정부 규정상 토지 확보 없이는 기념관 건립과 같은 본격적인 역사 사업 추진이 어렵다.
박 의원은 “이번 토지 매입 예산 반영은 향후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건립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결정적 토대”라며 “우금치를 단순한 유적이 아닌,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를 교육하는 살아 있는 역사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과거를 정비하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일
우금치 전적 정비는 단순한 문화재 보수가 아니다. 그것은 봉건 질서의 붕괴와 농민 민주화 운동의 출발이라는 한국 근현대사의 뿌리를 오늘의 시민에게 되묻는 작업이다.
130년 전 좌절된 국민주권의 꿈을 다시 호명하는 이 사업이, 우금치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원점으로 자리매김이 기대된다.























